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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장제의 도입및 반대사례 3

등록자IEbiz컨설팅

등록일2009-12-03

조회수98,875

제목 : 소사장제의 투입 및 반대투쟁사례 : 동신화학 노동조합


  1.기업의 현황과 노동통제의 특징

  부산시 사하구  신평동에 있는 동신화학은  사출완구(프라스틱완구)를
생산하는 업체로서 분활 이전까지 12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수출과 내
수에서 8:2정도로 판매되는데 겨울철이  비수기이며 5월부터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최근 몇년  사이 원가상승분만큼 가격인상이 제대로  되지 않
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사출 완구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업체(이  업계에
는 큰 기업이  없다)로서 비교적 잘되는 기업이었으며  다른 영세기업들
을 밟고 성장해왔다.

  사장은 연월차휴가도 재대로 주지않는 등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 먹거
나 지극히  낮은 임금으로 나이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챙겨왔
다. 사장은 동신화학에 조합이 결성되자 위원장에게 "내  거, 니가 들어
와서 감놔라 대추나라  하느냐?"고 할만큼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
람이다. 동신화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나이많은  사람들로,
남자는 35세 이상,  여자는 40~50세가 다수를 이루는데,  생산에서 특별
한 기술이 요구되지 않으므로 대부분 비숙련 노동자들이다.

  생산노무관리는 17명의 조반장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이윤증대의 방
편은 오직 극단적인  노동력 착취에 있을 뿐으로 조반장을  내세운 감시
감독은 이윤의 크기와 직결되었다. 조반장들은  대부분 40대들로 사장의
친인척도 있고 사장과  비교적 관계가 좋았으며 조합이 결성된  후 관계
는 더욱 밀착되었다.  조반장들은 조합이 결성되고 조합원의  의식이 성
장하여 자신들의 지위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사장이 잦은  회식과 전세
금을 빌려주는 등의  물량공세를 펴자 더욱 더 사장에게  매달리는 입장
이 되었다. 동신화학의 위장분할은 대체로  노동자 분할지배의 연장이라
고 할 수 있다.

   2.노조의 결성과 투쟁

  1988년 한때 조합결성의 움직임이 조반장  중심으로 있었으나, 사장에
게 발각되어 시말서를  쓰고 끝난 일이 있었다. 1989년 3월  19일 8명이
발기하여 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날부터 6월 10일 단체협약을  체결하
고 노조전임자와 사무실을 확보하기까지의 근  3개월간 회사는 끊임없이
공격을 가해왔고, 조합원은  이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이 기간
내내 회사는 조반장을  사주하여 노사간의 분규를 노노분규로  위장하여
조합을 깨려 하였으나,  노조가 유연한 전술로 단체협역  체결에 성공하
여 조합파괴 음모를 분쇄하였다.

  처음 조합이 결성되자 회사는 핵심간부에  대한 부서이동으로 답했다.
부서이동을 당하게 된  사람들은 원래의 자기부서에서 일하면서  이동명
령을 받은 부서에  지원을 나가는 등 유연하게  대처했다. 핵심조합원들
이 탄압과 회유에  끄덕없이 버티자 사장은 전체 종업원이  모인 자리에
서 공개적으로 노조를  비방했다. 여기에 위원장이 나서  노조의 필요성
을 설득하여 몸싸움이  있긴 했으나 32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
입하였다. 이 여성 조합원들은 끝까지 투쟁에 참여했던 아줌마들이다.

  단체협약을 맺기위해 교섭을  전개하던 중 조합원이 80명으로  늘어나
게 되었다. 무성의하게  교섭을 끌던 사장은 갑자기  산업시찰이라는 명
목으로 출국해버렸는데, 사장이  떠나고 난 후 계장을  우두머리로 조반
장들로 구성된 구사대가 조직되었다. 구사대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서 여성 조합원들에게 끊임없이 사소한 시비를  벌여왔고 여성부장을 구
타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조합은 노조 싸움울 피하기  위해 애를 써왔으
나 이 사건에 격분하여 5월 12, 13일  양일간 노조탄압 중지와 공개사과
를 요구하는 연좌농성을  벌였다. 조합원들의 단호한 결의  끝에 사과를
받아내었는데, 사장의 사주를 받은 조반장들은 다시 음모를 꾸몄다.

  현장 안의  비조합원들을 부추겨  "노조가 생겨서 사사건건  말썽이니
같이 일을 못 하겠다. 위원장이 나가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 위원장을
회사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여기에 항의하는 핵심조합원과  여성부장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밖으로  나왔는데, 이 시기동안  조반장의
협박과 회유에 의해 다수의 조합원이 탈퇴하여  조합에는 42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미 짐작이  가겠지만 정해진 각본대로 사장이  떠나고 구사대
가 조직되어 이들이 일부러 현장내에서 말썽을  일으키면서 불안을 조성
하고, 이 말썽이  노조결성에 따른 평지풍파인 것으로  흑색선전을 하여
생계불안을 느끼는 노동자의  심리를 노조반대의 분위기로 몰고간  것이
다.

  쫓겨난 사람들이 주도하여  단협 투쟁은 계속되었다. 5월  25일, 쟁의
를 결의하자 관리자들이 휴업공고를 붙였는데,  다음날 사장이 귀국하여
휴업을 철회하고 교섭이 재개되엇다. 교섭은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6월
8일 조합은 파업에 들어갓다. 회사안에서 농성에  들어간 조합원들은 출
입문을 봉쇄했지만 사람의  출입을 막지 않고, 제품의  출입만 막았으므
로 현장에서 비조합원들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완성품 조립공정
을 맡고 잇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합원이었으므로  제품 출고가 안되어
파업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구사대가 우루루 내려와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으나, 언론사에서 나와
취재하고 무비카메라를 들이대자 파업파괴도 수포로  돌아가고, 파업 사
흘만에 요구안 100%쟁취의 승리를 거두었다.  요구가 정당했고 조합원은
소수였지만 일치단결해 있었으며, 적은 인원으로  파업의 효과를 최대화
하는 전술이 주효햇다고  할 수 있다. 파업을 하는 한편  언론에 취재를
요청하고 사장의 집앞에 집회허가서를 내는 등  다양한 압력수단을 동원
했던 것이다.

  단협투쟁에서 승리한 후 비조합원들이 일주일간 출근하지  않는 등 조
반장들과의 갈등은  계속되었으나, 조합은  조합원의 의식 향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비조합원들을 꾸준히  설득하여 갈등이  전면화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장의 집요한 분열공작으로 크게  나아지지 못했
던게 사실이다. 8월부터  임금인상 투쟁에 들어가면서 일당  1천원 인상
을 내걸고 "조합에 참여하여 조직력이 강화되면  교섭에 이길수 있다"고
비조합원을 설득했으나, 사장은  그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더  올려주겠
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임금투쟁은 쟁의에 들어가기  전에 조합의 승리
로 끝났다. 그리고 조합은 부산노련에 가입했다.

  3.위장분할음모와 노조의 투쟁

  임금인상 투쟁이  끝난 후  사장의 분할  음모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11월, 사장이 금형반장에게  금형반을 떼어 따로 회사를  만들것을 제안
했다는 소문을 접한 노조는 이에 대해 교섭을  요구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서 잔업을 거부하자 사장은 곧 이를  철회했지만 사장은 뒷전에
서 이를 계속  추진했다. 12월 초 사장이 위원장을 면담하여  과거 이야
기를 하면서 "자신이 일찍 노사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으면 그런 일
이 없었을것"이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건강상 이유로 대리사장을  두든
지 분할을 하든지  계속 자신이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장은 돌아와  간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분할이  된다면
두부분으로 쪼개질  것이라고 가정하고(8개로  쪼개질줄은 상상도  못했
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노조운영  자체에는 일단 큰 문제
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분할이 불가피할 때 조합이 원하는  책임자를 내
세을 것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12월 25일 사장이 분할을 공표하자 조합은  기업의 분할축소는 노사협
의 사항이므로 단체교섭을 요청하고 비상대책위를  꾸렸다. 교섭에 들어
가자 사장은 분할 이유를 생산관리의 효율화라고  주장하면서 분할에 따
른 조합정리를 교섭하고자  했다. 30일 사장이 전체  노동자들을 모아놓
고 고별사를 했다. 조합원들은 이후 2층  휴게실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
다. 사장은 휴업 공고를 내었으며 조합은  쟁의결의 신고를 접수시켰다.
1월 3일 출근한  조합원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교섭에  들어간 사람들은
회사에서 내정한 8명보다 더많은 공탁금을 낼 테니  조합에서 위임한 사
람들에게 넘겨달라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장은 요지 부동으로 분할의 음모가  사실상 노조와해에 있음
을 스스로 폭로하면서  버텼는데, 이날부터 대공과형사 등  경찰이 회사
안에 상주하고 있었다.  4일, 쟁의행위에 대한 신고를  내었다.(이 신고
는 후에 반려되었다고 함) 다음날 사장과의 교섭이  계속 되었으며 오후
5시 30분경 회사측은  `조반장으로 구성된 분업체 사장들과  근로조약을
다시 체결하지  않는 근로자는  1월 6일부터 회사출입을  통제하겠다'는
공고를 붙였다. 위원장은  몰려든 정보과장, 형사,부산시 사회과장,  근
로감독관들에게 공권력  개입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2주내에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이날 사장과 공권력에 야합술수에  의해 구속되고 만
다. 교섭중 사장이 나가려 하자 못나가게 막았는데  이것이 불법감금 업
무방해죄가 되었으며, 쟁의신고는  대상이 노사협의 사항이 될  수 없는
경영권 침해라는 명목으로  위원장 구속 후에 반려  되었다. 교섭장에는
형사들이 6명이나 함께 있었는데도(이들은 무비  카메라로 현장을 찍고,
노조간부에 대한  스냅 사진을  찍고 있었다.)불법 감금이라는  것이다.
야비하게도 이들은 저녁식사를 하자고  중국음식을 시켜주고는 농성조합
원들을 몽땅 연행하였으며  사장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던  위원장을 덮
쳤던 것이다. 이날의  일로 3명이 구속되고, 10명이 불구속  입건, 20명
이 즉심에 넘겨졌다. 위원장이 구속되어 지도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출근투쟁에 나섰다. 회사
측에서는 퇴직금을  받아가라고 여러가지로 회유하였으나 "일단  위원장
이 석방될때까지는 출근투쟁과 항의전화 , 지역내 선전  홍보 등으로 투
쟁목표를 잡고, 위원장이  석방된 후 다시 새로운  투쟁방향을 모색할것
을 다짐하면서 긍까지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사하구 공단
노조협의회에서 세차레 지지성명을 냈으며,  부산노련에서 투쟁기금지원
을 위해 일일찻집을 열어주고, 노조에서 모금을 해주는  등 지원이 있었
으나 조합원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했던 지도력의 공백을  메워주지는
못했던 것같다. 이 점은 당시 눈물겨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타까
운 일이었다.

  사장은 5월초 중노위에서  회사를 다시 가동하겠다고 하였다.  옥중에
있던 위원장은 회사로 다시 들어가서 조합을 계속  이어갈 것을 당부(조
합의 규약을 개정하여  조직을 유지하려고 했다.)했으나 이것은  이루어
지지 못했다. 다섯달에 걸친 힘겨운 투쟁 끝에  28명의 조합원이 출감한
위원장을 맞이했으나, 당시 조합원들은 디시  조반장과 사장을 쳐다보며
작업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었고, 이는 그간
회사의 작태로 볼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써 동신화학의 위장분할  철회투쟁은 조합의 부분적 승리와  회사
측의 완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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